1944 최신값2.6만
전년 대비 (1940 → 1944) 1,880명+7.8%
4년 누적 변화 (1925 → 1944) 6,397명+32.8%
기간 최고·최저
19442.6만명
19252.0만명

한눈에 보는 추이 그래프

시도/성/연령/국적별 인구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일본·외국인 인구 구조 (명)
시도/성/연령/국적별 인구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일본·외국인 인구 구조시도/성/연령/국적별 인구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일본·외국인 인구 구조 값 비교 차트. 1925부터 1944까지의 5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19,523명, 최고 25,920명, 평균 22,688명. 전체 흐름은 증가(32.8%).064801296019440259201925: 19,523명19251930: 21,058명19301935: 22,899명19351940: 24,040명19401944: 25,920명1944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차원별 시각화

1940년 국적별 인구 비중 (%)
1940년 국적별 인구 비중1940년 국적별 인구 비중 비중 차트. 총 4개 항목 중 조선인이 96.2%로 가장 큰 비중. 상위: 조선인 96.2%, 내지인(일본인) 2.9%, 중국인 0.6%.조선인: 96.2% (96.2%)내지인(일본인): 2.9% (2.9%)중국인: 0.6% (0.6%)기타 외국인: 0.3% (0.3%)조선인96.2% 내지인(일본인)2.9% 중국인0.6% 기타 외국인0.3%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연도별 실제 수치

시도/성/연령/국적별 인구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일본·외국인 인구 구조 데이터 표 (단위: 명)
연도총인구만명조선인만명내지인만명외국인만명
1925195218874223
193021062046537
193522905811
1940240423146921
1944259224767541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자세한 해설

한눈에 보기 — 일제강점기 국적별 인구 현황

1925~1944년 국적별 인구 구조

결론부터 말하면, 1940년 조선 총인구 약 2,404만 명 중 조선인이 약 96.2%, 일본인(내지인) 약 2.9%, 중국인 등 외국인 약 0.9%예요.

조선 총인구는 1925년 약 1,952만 명에서 1944년 약 2,592만 명으로 20년간 약 33% 증가했어요.

연도별 국적별 인구 추이

연도총인구(만 명)조선인(만 명)내지인(만 명)외국인(만 명)
19251,9521,8874223
19302,1062,046537
19352,2902,2215811
19402,4042,3146921
19442,5922,4767541

외국인은 1931년 만보산 사건 이후 급감했다가 1940년대 전시 강제 노동으로 다시 증가했어요.

시도별 내지인 집중 지역 (1940년)

시도총인구(만 명)내지인(명)내지인 비중(%)
경기(경성)약 238약 168,000약 7.1
경남(부산)약 237약 90,000약 3.8
함남약 196약 72,000약 3.7
평남(평양)약 174약 62,000약 3.6
전국2,404약 690,000약 2.9

경성·부산·평양 등 주요 도시의 내지인 비중이 특히 높았어요.

성별·연령별 구성 (1940년, 전체)

연령대조선인 남성(만)조선인 여성(만)내지인 남성(만)내지인 여성(만)
0~14세약 374약 358약 84약 82
15~44세약 580약 568약 185약 155
45세 이상약 212약 222약 57약 61

내지인은 15~44세 남성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요. 취업 목적 이민 구조가 반영돼 있어요.

주목할 역사적 포인트

첫째, 조선 인구가 20년간 약 33% 성장했어요. 출생률 증가와 초보적인 위생·의료 개선이 사망률을 낮췄어요.

둘째, 일본인(내지인)은 전체 인구의 3% 미만이었어요. 소수임에도 행정·경제의 핵심을 장악했어요.

셋째, 화교 인구는 1920년대 최고 약 7만 명이었어요. 1931년 만보산 사건 후 급감했어요.

넷째, 1944년 외국인 급증은 전시 강제 노동의 흔적이에요. 중국인·동남아시아인 강제 징용 흔적이에요.

통계표 — 차원별 상세 수치

어떤 통계가 있나요?

DT_1IN4401은 1925~1944년 국세조사 기반 국적별 인구 데이터를 제공해요. KOSIS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어요.

조선인 인구 성장률 추이

기간조선인 증가(만 명)연평균 성장률(%)
1925~1930+159약 1.6
1930~1935+175약 1.6
1935~1940+93약 0.8
1940~1944+162약 1.7

1935~1940년 성장률 둔화는 일제의 대규모 조선인 이주(만주·일본) 동원 때문이에요.

주요 시도별 외국인 현황 (1940년)

시도중국인(명)기타 외국인(명)
경기약 5,200약 3,800
경남약 4,100약 1,200
평남약 2,800약 900
인천약 3,600약 400

인천·경성·부산 항구도시에 화교가 집중됐어요.

통계 활용 시 주의사항

현재 국적 개념과 차이: 당시 조선인은 일본 국적자이나 별도 법적 지위로 분류됐어요.

행정구역 기준: 현재 남북한 전체 지역을 포괄해요.

용어·산식·조사 방법 해설

핵심 용어 해설

조선인: 조선 출신 거주민. 일본 국적을 가졌지만 법적으로 별도 관리됐어요.

내지인(內地人): 일본 본토 출신 일본인이에요.

화교(華僑): 중국 본토 출신 재조선 중국인이에요.

국세조사(國勢調査): 5년마다 실시된 전국 인구 총조사예요.

통계의 한계와 주의점

강제 동원 누락: 1940년 이후 일본·만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조선 거주 통계에서 제외됐어요.

군인 미포함: 조선 주둔 일본군 병력은 통계 대상에서 제외됐어요.

“일본인 3%가 행정·경제를 장악”한 구조는 식민지 지배의 전형적인 패턴이에요. 이 소수 지배 구조가 1945년 해방 직후 행정 공백과 혼란을 초래한 직접 원인이에요.

더 알아보기

출처: KOSIS — 시도/성/연령/국적별 인구 (DT_1IN4401) 원본 페이지에서 차원별 상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어요. 공공누리 출처표시.

자주 묻는 질문

이 통계에서 '국적'이란 무엇인가요?
일제강점기 조선 내 인구를 조선인·내지인(일본 본토 출신)·외국인(중국인·러시아인 등)으로 분류한 것이에요. 당시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가졌지만 별도 법적 지위로 관리됐어요. 현재의 국적 개념과 다르게 적용됐어요.
중국인(화교)이 조선에 많이 살았나요?
1920~30년대 화교(중국인) 인구가 수만 명 수준이었어요. 주로 인천·경성·부산 등 항구도시와 상업 중심지에 거주했어요. 1931년 만보산 사건 이후 화교 배척 운동으로 급감했어요.
1944년 외국인이 급증한 이유는?
태평양전쟁 확대로 중국인 강제 노동자 유입 때문이에요. 전시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중국인·동남아시아인 노동자가 조선으로 끌려왔어요.
이 통계로 뭘 알 수 있나요?
식민지 조선의 다민족 구성, 일본인 집중 거주 지역, 화교 분포, 조선 인구 성장 추이를 파악할 수 있어요. 해방 직후 귀환·이주 규모를 추정하는 기초 자료이기도 해요.
원시 데이터를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KOSIS(국가통계포털) 통계표 DT_1IN4401에서 시도·성·연령·국적별 교차 데이터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