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최신값89가구
전년 대비 (청진 → 군산) 17가구-16.0%
8년 누적 변화 (부산 → 군산) 1,282가구-93.5%
기간 최고·최저
부산1,371가구
군산89가구

한눈에 보는 핵심 비교

1925년 개항수면 세대 및 인구 현황 – 항구도시별 통계 (가구)
1925년 개항수면 세대 및 인구 현황 – 항구도시별 통계1925년 개항수면 세대 및 인구 현황 – 항구도시별 통계 값 비교 차트. 부산부터 군산까지의 9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89가구, 최고 1,371가구, 평균 317.1가구. 전체 흐름은 감소(-93.5%).0342.8685.51028.31371부산: 1,371가구부산진남포: 313가구진남포인천: 286가구인천신의주: 267가구신의주목포: 176가구목포원산: 125가구원산용암포: 121가구용암포청진: 106가구청진군산: 89가구군산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차원별 시각화

성별 인구 분포 (1925년) (명)
성별 인구 분포 (1925년)성별 인구 분포 (1925년) 값 비교 차트. 남부터 여까지의 2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652명, 최고 14,753명, 평균 7702.5명. 전체 흐름은 감소(-95.6%).03688.37376.511064.814753남: 14,753명여: 652명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가구 유형별 분포 (1925년) (가구)
가구 유형별 분포 (1925년)가구 유형별 분포 (1925년) 값 비교 차트. 보통가구부터 준가구까지의 2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829가구, 최고 2,113가구, 평균 1,471가구. 전체 흐름은 증가(154.9%).0528.31056.51584.82113보통가구: 829가구보통가구준가구: 2,113가구준가구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가구 유형별 세대 내 인구 (1925년) (명)
가구 유형별 세대 내 인구 (1925년)가구 유형별 세대 내 인구 (1925년) 값 비교 차트. 보통가구내 인구부터 준세대내 인구까지의 2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2,456명, 최고 12,949명, 평균 7702.5명. 전체 흐름은 증가(427.2%).03237.36474.59711.812949보통가구내 인구: 2,456명보통가구내…준세대내 인구: 12,949명준세대내 …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상세 데이터 표

항구별 가구 현황 (1925년) (단위: 가구)
항구가구
2,942
부산1,371
진남포313
인천286
신의주267
목포176
원산125
용암포121
청진106
군산89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가구 유형 및 세대 구성 (1925년) (단위: 가구)
분류가구 수세대내 인구
가구계2,942-
보통가구8292,456
준가구2,11312,949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성별 인구 분포 (1925년) (단위: 가구)
분류비율
전체 인구15,405100.0%
14,75395.8%
6524.2%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자세한 해설

1925년은 일제강점기 중반입니다. 당시 조선의 개항장(항구도시) 지역의 세대와 인구를 기록한 통계입니다. 개항장은 일본과의 무역을 위해 개방된 항구로,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1925년 개항 지역 전체에는 약 15,405명이 2,942가구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프로 보면, 부산이 1,371가구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진남포(313가구), 인천(286가구), 신의주(267가구) 같은 주요 항구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부산은 전체의 46.6%를 차지하며, 당시 가장 중요한 항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위 10개 항구만으로도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가구 유형을 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드러납니다. 보통가구는 829개에 불과했지만, 준가구는 2,113개로 훨씬 많았습니다. 준가구가 보통가구의 2.5배 이상입니다. 이는 개항장 지역에 일시적으로 모여든 상인이나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세대 내 인구를 보면 이 특징이 더욱 명확합니다. 보통가구 내에는 2,456명이 살았고, 준세대 내에는 12,949명이 살았습니다. 보통가구보다 준세대에 약 5배 이상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표를 보면 준세대의 인구 집중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성별 분포에서는 극단적인 차이가 나타납니다. 남자는 14,753명(95.8%), 여자는 652명(4.2%)입니다. 여자 비율이 매우 낮은데, 이는 당시 통계 기록 방식의 제약이나 항구 지역에 남자 노동자가 크게 집중되었던 사회 상황을 반영합니다.

개항장은 일본과의 무역 거점으로 기능하면서 상인, 노동자, 직공 등이 집중되는 특수한 도시였습니다. 가구보다 준가구가 많고, 보통가구 내 인구보다 준세대 내 인구가 많다는 점은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높은 인구 유동성과 임시 거주 특성을 가진 지역이었습니다.

데이터 출처와 한계

이 통계는 1925년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가 기록한 개항수면(개항장 인접 지역) 인구통계입니다. 단일 연도 자료이므로 시간에 따른 변화 추이를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당시 통계 기록 방식의 제약으로 인해 여성 인구 집계가 불완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항장 지역의 특수성(임시 거주자, 노동자 중심)을 고려할 때, 기록된 인구는 실제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1925년 개항장이란 무엇인가요?
개항장은 일제강점기에 조선과 일본이 무역하기 위해 개방한 항구도시입니다. 부산, 인천, 원산 등 주요 항구를 중심으로 상업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입니다.
부산에 가장 많은 가구가 있었나요?
네, 부산이 1,371가구로 가장 많았습니다. 전체 2,942가구 중 약 46.6%를 차지했으며, 당시 부산은 가장 큰 무역항이었습니다.
보통가구와 준가구는 무엇이 다른가요?
보통가구는 일반 가정이고, 준가구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공동생활 형태입니다. 개항장 지역에는 준가구(2,113개)가 보통가구(829개)보다 훨씬 많았으며, 이는 항구에 모여든 상인과 노동자들을 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