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최신값9.5백만
전년 대비 (남 → 여) 51.9만명-5.2%
1년 누적 변화 (남 → 여) 51.9만명-5.2%
기간 최고·최저
10.0백만명
9.5백만명

한눈에 보는 핵심 비교

1925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첫 본격적인 전국 대규모 인구조사: 도별 지역별 인구·가구·성비 현황 (명)
1925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첫 본격적인 전국 대규모 인구조사: 도별 지역별 인구·가구·성비 현황1925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첫 본격적인 전국 대규모 인구조사: 도별 지역별 인구·가구·성비 현황 값 비교 차트. 남부터 여까지의 2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9,502,002명, 최고 10,020,943명, 평균 9761472.5명. 전체 흐름은 감소(-5.2%).02505235.85010471.57515707.310020943남: 10,020,943명여: 9,502,002명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차원별 시각화

1925년 조선의 가구 유형별 구성 (가구)
1925년 조선의 가구 유형별 구성1925년 조선의 가구 유형별 구성 비중 차트. 총 2개 항목 중 보통가구이 99.1%로 가장 큰 비중. 상위: 보통가구 99.1%, 준가구 0.9%.보통가구: 3,686,691가구 (99.1%)준가구: 34,082가구 (0.9%)보통가구99.1% 준가구0.9%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1925년 조선 보통가구 내 성별 인구 (명)
1925년 조선 보통가구 내 성별 인구1925년 조선 보통가구 내 성별 인구 값 비교 차트. 남부터 여까지의 2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9,479,653명, 최고 9,845,808명, 평균 9662730.5명. 전체 흐름은 감소(-3.7%).02461452492290473843569845808남: 9,845,808명여: 9,479,653명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1925년 조선 세대유형별 인구 (명)
1925년 조선 세대유형별 인구1925년 조선 세대유형별 인구 값 비교 차트. 보통가구부터 준세대까지의 2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197,484명, 최고 19,325,461명, 평균 9761472.5명. 전체 흐름은 감소(-99.0%).04831365.39662730.514494095.819325461보통가구: 19,325,461명보통가구준세대: 197,484명준세대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상세 데이터 표

1925년 조선 전국 인구·가구 통계 (단위: 명)
항목
전국 인구19,522,945명
- 남10,020,943명
- 여9,502,002명
성비 (여자백명당남자수)105.9
가구계3,720,773가구
- 보통가구3,686,691가구
- 준가구34,082가구
세대 평균 인원5.3명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1925년 조선 보통가구 통계 (단위: 명)
항목
보통가구 내 인구19,325,461명
- 남9,845,808명
- 여9,479,653명
세대 평균 인원5.3명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1925년 조선 준세대 통계 (단위: 명)
항목
준세대 인구197,484명
- 남175,135명
- 여22,349명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자세한 해설

1925년 인구조사는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조선 전역의 첫 대규모 인구·가구 통계다. 이 조사로 당시 조선의 사회 구조와 인구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1925년 조선의 인구는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1925년 조선의 전체 인구는 약 1,952만 명이었다. 남자는 약 1,002만 명, 여자는 약 950만 명으로 남자가 약 50만 명 더 많았다. 여자 100명당 남자 105.9명이라는 성비는, 당시 남자의 인구가 여자보다 조금 많았다는 뜻이다. 이런 성비는 출생과 사망, 인구 이동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그래프로 보면, 남녀 인구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지만 남자가 조금 더 많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남녀의 인구 규모가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의 인구 중 약 51%가 남자, 약 49%가 여자였다.

당시 가구는 어떤 형태였나요?

당시 가구 상황을 보면 더 흥미롭다. 표를 보면 전체 가구는 약 372만 가구였다. 이 중 일반 가정인 보통가구는 약 369만 가구로 전체의 99% 이상을 차지했다. 준가구(주인 없는 주택, 단체 생활처, 절, 감옥, 군영 등)는 3만 4천 가구로 1% 미만이었다.

세대 평균 인원은 5.3명이었는데, 이는 한 가구에 평균 5명 이상이 함께 살았다는 뜻이다. 지금(2020년대)의 평균 가구원 2.5명과 비교하면, 당시 가족 구조가 얼마나 달랐는지 생생히 알 수 있다. 당시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녀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 보통이었다.

보통가구만 따로 보면, 인구는 약 1,932만 명이었다. 남자 약 985만 명, 여자 약 948만 명이었다. 표를 보면 대부분의 조선 인구이 보통가구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준세대에는 누가 살았나요?

준세대(주인이 없거나 일시적인 거주처)의 인구는 약 19만 7천 명으로, 남자가 약 17만 5천 명으로 대다수였다. 이는 당시 노동자나 군인 등 남성이 주로 준세대에 거주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1925년 조사는 왜 중요한가요?

1925년 조사는 여러 이유로 중요하다. 첫째,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의 인구 규모와 구조를 정확히 보여준다. 둘째, 이 시기 이후 광복(1945년)까지 조선 인구의 변화를 추적할 기준점이 된다. 셋째, 당시 가족 구조가 지금과 완전히 다름을 생생히 알 수 있다. 넷째, 역사 연구와 인구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데이터 출처와 한계

이 통계는 몇 가지 제약이 있다. 첫째, 일제강점기의 도 경계와 현재의 도 경계가 다르므로 직접 비교가 어렵다. 당시 행정구역이 현재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둘째, 일제의 행정 목적으로 실시된 조사라 완전한 포괄성을 보장할 수 없다. 셋째, 당시 기술과 행정 능력의 한계로 누락된 인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수치들은 당시 조선의 인구를 ‘약 1,952만 명’으로 이해하되, 정확한 수치보다는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더 큰 가치가 있다. 자료 출처는 KOSIS 국가통계포털의 인구총조사 자료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1925년 조선의 인구조사가 왜 중요한가요?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의 인구 규모와 구조를 정확히 보여주는 첫 대규모 통계이며, 이후 광복(1945년)까지 인구 변화를 추적할 기준점이 됩니다.
당시 세대 평균 인원이 5.3명이라는 것은?
한 가구에 평균 5명 이상이 함께 살았다는 뜻입니다. 지금(2020년대)의 평균 가구원 2.5명과 비교하면, 당시에는 3대가 한집에 사는 대가족이 보통이었습니다.
성비 105.9가 무엇을 의미하나요?
여자 100명당 남자가 105.9명이라는 뜻으로, 당시 남자 인구가 여자보다 약 5% 정도 많았습니다.
준가구와 보통가구는 뭐가 다르나요?
보통가구는 일반 가정을 의미하고, 준가구는 주인 없는 주택, 절, 감옥, 군영 등 일시적이거나 특수한 거주처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