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 기상기술자 최신값124
전년 대비 (일본인 - 이과학연구원 → 일본인 - 기상기술자) 111명-47.2%
6년 누적 변화 (조선인 - 기타작업자 → 일본인 - 기상기술자) 6.6만명-99.8%
기간 최고·최저
조선인 - 기타작업자6.7만명
조선인 - 수산작업자119명

한눈에 보는 핵심 비교

1940년 인구총조사의 직업별 인구: 일본인 71만 명, 조선인 2,354만 명 (명)
1940년 인구총조사의 직업별 인구: 일본인 71만 명, 조선인 2,354만 명1940년 인구총조사의 직업별 인구: 일본인 71만 명, 조선인 2,354만 명 값 비교 차트. 조선인 - 기타작업자부터 일본인 - 기상기술자까지의 7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119명, 최고 66,622명, 평균 10605.6명. 전체 흐름은 감소(-99.8%).016655.53331149966.566622조선인 - 기타작업자: 66,622명조선인 -…조선인 - 토목건축작업자: 358명조선인 -…조선인 - 수산작업자: 119명조선인 -…일본인 - 가사사용인: 4,041명일본인 -…일본인 - 의료이용종사자: 2,740명일본인 -…일본인 - 이과학연구원: 235명일본인 -…일본인 - 기상기술자: 124명일본인 -…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차원별 시각화

조선인 직업 상위 10개 (명)
조선인 직업 상위 10개조선인 직업 상위 10개 값 비교 차트. 기타작업자부터 광물토석등채취업자까지의 10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2명, 최고 66,622명, 평균 6734.3명. 전체 흐름은 감소(-100.0%).016655.53331149966.566622기타작업자: 66,622명기타작업자토목건축작업자: 358명토목건축작…수산작업자: 119명수산작업자운송운반작업자: 87명운송운반작…교사약제사: 2명교사약제사교통통신기술자: 67명교통통신기…목죽초만류제품등제조작업자: 67명목죽초만류…요업토석류등가공작업자: 10명요업토석류…화학제품등제조작업자: 2명화학제품등…광물토석등채취업자: 9명광물토석등…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일본인 직업 상위 10개 (명)
일본인 직업 상위 10개일본인 직업 상위 10개 값 비교 차트. 가사사용인부터 피혁골우모류제품등제조작업자까지의 10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14명, 최고 4,041명, 평균 734.6명. 전체 흐름은 감소(-99.7%).01010.32020.53030.84041가사사용인: 4,041명가사사용인의료이용종사자: 2,740명의료이용종…이과학연구원: 235명이과학연구원기상기술자: 124명기상기술자교사약제사: 87명교사약제사인쇄지제품제조작업자: 57명인쇄지제품…토목건축작업자: 15명토목건축작…운송운반작업자: 16명운송운반작…사무자: 17명사무자피혁골우모류제품등제조작업자: 14명피혁골우모…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조선인 vs 일본인 인구 규모 (명)
조선인 vs 일본인 인구 규모조선인 vs 일본인 인구 규모 값 비교 차트. 조선인부터 일본인까지의 2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707,333명, 최고 23,547,233명, 평균 12,127,283명. 전체 흐름은 감소(-97.0%).05886808.311773616.517660424.823547233조선인: 23,547,233명조선인일본인: 707,333명일본인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상세 데이터 표

조선인·일본인 직업별 인구 상위 항목 (단위: 명)
항목인구
조선인 - 기타작업자66,622
조선인 - 토목건축작업자358
조선인 - 수산작업자119
일본인 - 가사사용인4,041
일본인 - 의료이용종사자2,740
일본인 - 이과학연구원235
일본인 - 기상기술자124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조선인 직업별 인구 (단위: 명)
직업
기타작업자66,622
토목건축작업자358
수산작업자119
운송운반작업자87
교통통신기술자67
목죽초만류제품등제조작업자67
요업토석류등가공작업자10
화학제품등제조작업자2
광물토석등채취업자9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자세한 해설

1940년 한반도의 인구 구성은 어떻게 됐나요?

1940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인구는 조선인 약 2,354만 명과 일본인 약 71만 명으로 이루어졌음. 일본인이 조선인의 약 33분의 1 수준이었음. 이 71만 명의 일본인은 1910년 일제의 한반도 식민화 이후 30년간 지속적으로 이주한 결과였음.

일본인들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었음. 서울(경성)·부산·평양 등 주요 도시에서 상인·행정가·군인·기술자·교사 등으로 활동했음. 한편 조선인 2,354만 명은 도시와 농촌 전역에 널리 분포했으며, 농업과 다양한 형태의 노동에 광범위하게 종사했음.

일본인과 조선인의 직업은 얼마나 달랐나요?

두 민족의 직업 분포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음. 표를 보면, 일본인의 경우 가사사용인(약 4,041명), 의료종사자(약 2,740명), 과학 연구원(약 235명) 등 상위 직종에 집중되어 있었음. 특히 가사사용인은 일본인 가정에서 일하던 조선인 여성을 포함하는 직업이었음.

조선인의 경우, 직업 분류에서 가장 많은 집단은 ‘기타작업자’ 약 66,622명이었음. 쉽게 말하면, 명확한 직업 분류에 속하지 않던 일용직·임시직·영세 자영업자들이 대다수였다는 뜻임. 그 다음은 토목건축 관련 작업(약 358명), 수산 작업(약 119명), 운송 관련 작업(약 87명) 등이었음. 조선인은 거의 모두 저임금 육체 노동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음.

왜 이렇게 차이가 났을까요?

당시 일본 제국은 조선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직업 기회를 체계적으로 차별했음. 일본인은 경제·행정·교육·의료 등 사회의 상위 직종을 독점했고, 조선인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제조업·농업·건설업 등 기초 산업에만 활용했음. 결론부터 보면, 같은 시대 같은 땅에 살면서도 일본인과 조선인은 완전히 다른 경제생활을 강제당했던 것임.

이러한 불평등한 분업 구조는 해방 이후에도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음. 식민지 시대 경제 불평등이 현대까지 이어지는 사회 격차의 역사적 뿌리가 되었음.

데이터 출처와 한계

본 통계는 1940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인구총조사 결과에 기반함. 당시 직업 분류 기준은 현대와 다르며, ‘기타작업자’ 같은 포괄적 범주가 포함되어 있음. 또한 이 데이터는 식민지 통치 체제 아래에서 작성된 통계이므로, 조사 방식과 분류의 객관성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고려해야 함. 역사 자료로서의 가치는 크지만, 통계의 정확성과 완전성은 현대 통계 기준보다 낮을 수 있음.

자주 묻는 질문

1940년 일본인이 조선에 왜 71만 명이나 있었나요?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후 30년 동안, 상인·행정가·군인·기술자 등 일본인이 지속적으로 이주했음. 경제 활동과 통치 기구의 최상위에 배치되어 조선을 지배했음.
조선인과 일본인의 일하는 분야가 완전히 다른 이유는?
당시 일제는 경제적 착취를 위해 직업 기회를 민족별로 차별적으로 배분했음. 일본인은 관리직·교육·의료 등 상위 직종을, 조선인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농업·건설·제조업에 활용했음.
조선인 66,622명의 '기타작업자'는 뭘 하던 사람들이었나요?
당시 분류상 '기타'는 직업이 불명확한 사람들을 의미함. 일용직·임시직·영세 자영업자 등 정식 직업 분류에 해당하지 않던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