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내지인(조선 거주 일본인) 추이 — 일제강점기 고용 구조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내지인(조선거주 일본인)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 거주 일본인의 시도별·성별·연령별·종사상지위별(고용주·피고용·자영) 분포를 정리한 KOSIS 공식 역사 통계 페이지.
1944 최신값75.3만명
전년 대비 (1940 → 1944)
6.3만명+9.1%
4년 누적 변화 (1925 → 1944)
32.8만명+77.3%
기간 최고·최저
194475.3만명
192542.5만명
한눈에 보는 추이 그래프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차원별 시각화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연도별 실제 수치
| 연도 | 내지인총수 | 피고용자율 | 고용주자영율 | 관공리율 |
|---|---|---|---|---|
| 1925 | 424700 | 58 | 22 | 17 |
| 1930 | 527016 | 60 | 21 | 16 |
| 1935 | 583428 | 61 | 20 | 15 |
| 1940 | 689790 | 62 | 20 | 15 |
| 1944 | 752823 | 65 | 18 | 14 |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자주 묻는 질문
- 종사상지위별 내지인 통계가 뭘 보여주나요?
-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이 어떤 지위로 일했는지 보여줘요. 고용주·관공리(공무원)·피고용자 비율을 통해 일본인이 행정·기업의 상위직을 독점했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요.
- 관공리(공무원) 비중이 15%나 되는 이유는?
- 식민지 통치를 위한 대규모 행정 인력이 파견됐기 때문이에요. 총독부·도청·군청·경찰서 등 모든 행정 기관에 일본인 관료가 배치됐어요. 조선인 공무원은 하위직에 집중됐어요.
- 내지인 고용주 비중이 높은 이유는?
- 식민지 자본 투자와 상업 독점 때문이에요. 무역·금융·토지·광업 분야에서 일본 자본가들이 사업체를 운영했어요. 조선인 고용주 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았어요.
- 1944년으로 갈수록 피고용자 비중이 높아지는 이유는?
- 태평양전쟁으로 군수공장·광산 노동자로 파견되는 일본인 증가 때문이에요. 전쟁 경제에서 기술자·노동자로 조선에 오는 비율이 높아졌어요.
- 조선인과 내지인의 종사상지위 비교가 가능한가요?
- 네. 동일 통계 체계에서 조선인(DT_1IN4403) 통계와 비교 가능해요. 조선인은 피고용자·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높고 고용주·관공리 비중이 낮아 극명한 대조를 보여요.
- 원시 데이터를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 KOSIS(국가통계포털) 통계표 DT_1IN4402에서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교차 데이터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어요.
자세한 해설
한눈에 보기 — 내지인 종사상지위별 현황
일제강점기 내지인 종사상지위 구조
결론부터 말하면, 1940년 조선 거주 일본인(내지인) 약 69만 명 중 피고용자 약 62%, 고용주·자영 약 20%, 관공리(공무원) 약 15%예요.
이 통계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지배 구조에서 일본인이 어떤 경제적 지위를 차지했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핵심 역사 통계예요.
연도별 내지인 종사상지위별 비중 변화
전쟁 경제가 심화되며 피고용자(노동자·기술자) 비중이 높아졌어요.
시도별 내지인 종사상지위 특징 (1940년)
경성은 관공리·상인 비중이 높고, 흥남(군수공장) 지역은 피고용자 비중이 압도적이에요.
성별 종사상지위 (1940년, 취업자 기준)
남성은 관공리·고용주 비중이 높고, 여성은 대부분 피고용자예요.
주목할 역사적 포인트
첫째, 관공리 비중이 조선인의 5~10배였어요. 총독부·경찰·사법 기관의 주요 직위는 일본인이 독점했어요.
둘째, 고용주 비중이 조선인보다 3~5배 높았어요. 자본·토지·사업체를 일본인이 우선적으로 소유·운영했어요.
셋째, 1940년대 피고용자 비중 증가는 전쟁 경제의 산물이에요. 공장·광산 기술자, 군수품 생산 관련 노동자 파견이 급증했어요.
넷째, 1945년 해방 후 관공리·고용주 층이 일시에 귀환했어요. 이는 한국의 행정·경제 운영에 즉각적인 공백을 초래했어요.
연도별 추이와 변화 흐름
이 통계가 뭐예요? — 한 문장으로 정리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내지인 추이는 일제강점기 국세조사를 기반으로 조선 거주 일본인(내지인)의 고용 지위를 시도·성·연령별로 집계한 공식 역사 통계예요.
쉽게 말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이 어떤 직위로 일했고, 지역별로 어떻게 달랐는지 보여주는 역사 자료예요.
1920~1940년대 변화
통계표 — 차원별 상세 수치
어떤 통계가 있나요?
DT_1IN4402는 1925·1930·1935·1940·1944년 국세조사 기반 내지인 종사상지위 데이터를 제공해요. KOSIS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어요.
1940년 내지인 직업별 상세 구성
관공리·상업·공업이 3대 직종이에요.
연령대별 종사상지위 (1940년, 남성)
나이가 들수록 고용주 비중이 높아지는 자연스러운 경력 구조가 보여요.
내지인 vs 조선인 종사상지위 비교 (1940년)
가장 큰 격차는 관공리(10배)와 무급가족종사자(9배)예요.
통계 활용 시 주의사항
역사적 맥락 필수: 당시 직업 분류 기준이 현재와 달라요.
취업자 기준 변동: 국세조사 기준일(10월 1일)의 계절적 취업 상황이 반영돼 있어요.
용어·산식·조사 방법 해설
핵심 용어 해설
관공리(官公吏): 국가·지방 행정 기관 공무원. 총독부·도청·경찰서 등 소속이에요.
고용주: 타인을 고용해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에요.
자영: 고용인 없이 혼자 사업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예요.
피고용자: 임금을 받고 일하는 모든 근로자예요.
통계의 한계와 주의점
군인 미포함: 조선 주둔 일본 군인은 국세조사 취업 통계에서 제외됐어요.
직업 분류 차이: 당시 직업 분류 체계가 현재 한국표준직업분류와 달라요.
더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