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 최신값9.2백만
전년 대비 (1940 → 1944) 29.0만명+3.3%
4년 누적 변화 (1925 → 1944) 1.4백만명+17.9%
기간 최고·최저
19449.2백만명
19257.8백만명

한눈에 보는 추이 그래프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조선인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인 고용 구조 (명)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조선인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인 고용 구조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조선인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인 고용 구조 값 비교 차트. 1925부터 1944까지의 5개 데이터 포인트. 최저 7,800,000명, 최고 9,200,000명, 평균 8,542,000명. 전체 흐름은 증가(17.9%).023000004600000690000092000001925: 7,800,000명19251930: 8,200,000명19301935: 8,600,000명19351940: 8,910,000명19401944: 9,200,000명1944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차원별 시각화

1940년 조선인 종사상지위별 구성 (%)
1940년 조선인 종사상지위별 구성1940년 조선인 종사상지위별 구성 비중 차트. 총 4개 항목 중 피고용자이 40.0%로 가장 큰 비중. 상위: 피고용자 40.0%, 자영(자가) 31.0%, 무급가족종사자 27.0%.피고용자: 40% (40.0%)자영(자가): 31% (31.0%)무급가족종사자: 27% (27.0%)고용주: 2% (2.0%)피고용자40.0% 자영(자가)31.0% 무급가족종사자27.0% 고용주2.0%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연도별 실제 수치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조선인 추이 — 일제강점기 조선인 고용 구조 데이터 표 (단위: 명)
연도취업조선인만명피고용자율자영율무급가족율고용주율
19257803733282
19308203832282
19358603931282
19408914031272
19449204329262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자세한 해설

한눈에 보기 — 조선인 종사상지위별 현황

일제강점기 조선인 종사상지위 구조

결론부터 말하면, 1940년 취업 조선인 약 891만 명 중 피고용자 약 40%, 자영(자가고용) 약 31%, 무급가족종사자 약 27%, 고용주 약 2%예요.

내지인(일본인)의 고용주 비중 12%·관공리 비중 15%와 비교하면, 조선인은 하위 취업 구조에 집중돼 있었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요.

연도별 조선인 종사상지위별 비중 변화

연도취업자(만 명)피고용자(%)자영(%)무급가족(%)고용주(%)
1925약 780약 37약 33약 28약 2
1930약 820약 38약 32약 28약 2
1935약 860약 39약 31약 28약 2
1940약 891약 40약 31약 27약 2
1944약 920약 43약 29약 26약 2

피고용자 비중이 점진적으로 증가해요. 농업에서 공업으로의 전환이 반영돼 있어요.

조선인 vs 내지인 종사상지위 비교 (1940년)

종사상지위조선인(%)내지인(%)격차
고용주약 2약 126배
관공리약 1.5약 1510배
자영약 31약 8
피고용자약 40약 62
무급가족약 27약 3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은 조선인이 9배 높아요. 농업 가족 노동 구조의 반영이에요.

시도별 조선인 취업 구조 (1940년)

시도농업 비중(%)공업 비중(%)상업·서비스(%)
전라남도약 85약 4약 11
경기(경성 제외)약 77약 8약 15
경성(서울)약 5약 28약 67
함경남도약 50약 35약 15

경성과 함경도 공업지대에서만 공업·서비스 취업이 높았어요.

성별 종사상지위 (1940년, 취업자 기준)

성별피고용자(%)자영(%)무급가족(%)고용주(%)
남성약 42약 36약 20약 2
여성약 37약 22약 40약 1

여성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40%로 압도적이에요.

주목할 역사적 포인트

첫째, 농업 중심 구조가 조선인 고용의 핵심이었어요. 취업자의 약 75%가 농업 관련 종사자였어요.

둘째, 고용주 비중 2%는 조선인 자본 형성의 극심한 제한을 보여줘요. 일본인 고용주 비중(12%)의 1/6 수준이에요.

셋째, 1940년대 피고용자 증가는 강제 동원의 흔적이에요. 광산·공장 강제 징용 노동자가 피고용자 범주에 포함됐어요.

넷째, 여성 무급가족종사자 40%는 성별 노동 착취 구조를 보여줘요. 여성 농업 노동이 경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통계표 — 차원별 상세 수치

연령대별 종사상지위 (1940년, 전국 남성)

연령대피고용자(%)자영(%)무급가족(%)고용주(%)
15~24세약 48약 12약 39약 1
25~34세약 42약 34약 22약 2
35~44세약 36약 43약 18약 3
45~54세약 32약 51약 14약 3
55세 이상약 28약 56약 14약 2

젊을수록 피고용자·무급가족, 나이 들수록 자영업자 비중이 높아요.

주요 시도별 피고용자 비중 (1940년, 조선인)

시도피고용자 비중(%)
경성(서울)약 70
함경남도약 58
평안남도약 52
경기(경성 제외)약 42
전라남도약 28

공업·도시화된 지역은 피고용자, 농촌 지역은 자영·무급가족 비중이 높아요.

통계 활용 시 주의사항

농업 vs 비농업 구분 필요: 농업 무급가족종사자와 비농업 무급가족종사자의 성격이 크게 달라요.

강제 동원 포함: 강제 징용 노동자가 피고용자 범주에 포함돼 통계 수치에 영향을 줬어요.

용어·산식·조사 방법 해설

핵심 용어 해설

소작농: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고 수확의 일부를 소작료로 내는 농민이에요. 당시 조선 농민의 상당수가 소작농이었어요.

자작농: 자기 소유 토지에서 농사짓는 농민이에요.

강제 징용: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로 노동에 동원한 것이에요.

통계의 한계와 주의점

강제 동원 실태 과소 반영: 일부 강제 동원 노동자는 통계에서 누락됐을 수 있어요.

농업 분류 기준: 당시 농업·임업·어업 분류가 현재와 달라요.

“조선인 고용주 2%“는 식민지 경제에서 조선인의 자본 형성이 얼마나 제한됐는지를 보여줘요. 이 구조가 해방 후 한국 경제 출발점의 자본 열세를 만든 역사적 배경이에요.

더 알아보기

출처: KOSIS —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조선인 (DT_1IN4403) 원본 페이지에서 차원별 상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어요. 공공누리 출처표시.

자주 묻는 질문

조선인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27%나 되는 이유는?
소규모 농가 중심의 농업 구조 때문이에요. 당시 조선인의 약 75%가 농업에 종사했고, 농가 가족이 함께 일하는 소작농·자작농 구조에서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자연스럽게 높아요.
내지인(일본인)과 조선인 종사상지위가 어떻게 달랐나요?
가장 큰 차이는 고용주 비중이에요. 내지인 고용주 비중이 약 12%인 반면 조선인은 약 2%였어요. 또한 내지인 관공리(공무원) 비중이 약 15%인 반면 조선인은 약 1.5%로 행정·관리직 진입이 극히 제한됐어요.
1940년대 피고용자 비중이 증가한 이유는?
전시 공업화로 군수공장·광산 노동자 수요 급증 때문이에요. 함경도 흥남·청진 등 공업지대에 조선인 노동자가 대거 동원됐어요. 강제 징용도 이 시기에 집중됐어요.
조선인 고용주 비중이 왜 낮은가요?
자본·토지·사업 허가 접근에서의 차별 때문이에요. 일본인 자본가와의 경쟁에서 밀려났고, 금융 접근도 제한됐어요. 조선인 자본가 계층은 극히 소수였어요.
이 통계가 경제사 연구에 어떻게 활용되나요?
식민지 경제 구조, 조선인 자본 형성 과정, 강제 동원 규모, 해방 후 경제 기반 분석에 활용돼요. 조선인 고용 구조가 1945년 이후 어떻게 재편됐는지 비교 연구에도 중요해요.
원시 데이터를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KOSIS(국가통계포털) 통계표 DT_1IN4403에서 시도·성·연령·종사상지위별 교차 데이터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