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한국의 주택 종류와 취사용연료 - 579만 가구 분석
1970년 주택총조사 기준 한국 전국 579만 가구의 주택 종류와 취사용연료 현황. 독립주택 95%, 연탄·나무 99%를 사용하던 시대의 가구 생활상을 담고 있습니다.
기타 최신값1,914가구
전년 대비 (전기 → 기타)
2,402가구-55.7%
5년 누적 변화 (연탄 → 기타)
3.0백만가구-99.9%
기간 최고·최저
연탄3.0백만가구
기타1,914가구
한눈에 보는 핵심 비교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차원별 시각화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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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데이터 표
| 지역 | 가구(가구) | 가구원(명) |
|---|---|---|
| 전국 | 5,792,767 | 30,387,361 |
| 서울특별시 | 1,067,222 | 5,244,224 |
| 경상북도 | 843,669 | 4,421,230 |
| 전라남도 | 700,444 | 3,900,681 |
| 경기도 | 633,421 | 3,241,407 |
| 경상남도 | 571,303 | 3,030,749 |
| 시부 | 2,474,894 | 12,320,746 |
| 면부 | 2,789,910 | 15,304,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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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의 종류 | 가구(가구) | 가구원(명) |
|---|---|---|
| 일반주택 | 5,758,342 | 30,207,074 |
| 독립주택 | 5,505,815 | 28,973,388 |
| 연립주택 | 210,700 | 1,039,156 |
| 공동주택 | 41,827 | 194,529 |
|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 | 34,425 | 180,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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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사용연료 | 가구(가구) | 가구원(명) |
|---|---|---|
| 연탄 | 3,016,873 | 14,999,740 |
| 나무 | 2,720,275 | 15,092,380 |
| 석유 | 37,907 | 193,377 |
| 개스 | 11,481 | 69,931 |
| 전기 | 4,316 | 21,788 |
| 기타 | 1,914 | 10,143 |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자주 묻는 질문
- 1970년 한국 가구의 주택은 어떤 형태였나요?
- 1970년 당시 한국의 가구는 거의 모두 단독주택(독립주택) 형태였습니다. 전체 579만 가구 중 일반주택이 99.4%를 차지했고, 그 중 독립주택은 95%였습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은 전체의 0.7%에 불과해 현대와는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 1970년에는 어떤 연료로 밥을 지었나요?
- 1970년 당시 한국 가구의 99%는 연탄이나 나무로 밥을 지었습니다. 연탄을 사용한 가구가 52%, 나무를 사용한 가구가 47%였습니다. 개스나 전기를 사용한 가구는 0.3% 미만으로 매우 드물었습니다.
- 도시와 시골의 가구 수 차이가 있었나요?
- 1970년에는 시골(면부)의 가구가 도시(시부)보다 약간 많았습니다. 시부는 247만 가구(42.7%), 면부는 279만 가구(48.1%)로 농업 사회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시골 지역은 대부분 독립주택이고 나무로 밥을 지었고, 도시 지역은 상대적으로 연탄 사용이 많았습니다.
- 1970년 평균 가구원 수는 얼마였나요?
- 1970년 한국 가구의 평균 가구원 수는 약 5.2명이었습니다. 현대의 2-3명과 비교하면 훨씬 많았습니다. 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녀가 함께 사는 대가족 구조가 일반적이었던 시대를 반영합니다.
자세한 해설
1970년 한국의 주택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당시 한국은 전국 579만 가구, 3천만 명이 살고 있었으며, 주택은 거의 모두 단독주택이었고 밥은 연탄이나 나무로 지었습니다.
주택은 거의 모두 단독주택이었어요
1970년 한국 가구의 주택을 보면 일반주택이 99.4%로 절대 다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독립주택(개별 단독주택)이 95%에 달했습니다. 현대처럼 아파트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은 거의 없었습니다. 연립주택은 21만 가구(3.6%),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은 4만 가구(0.7%)에 불과했습니다. 도시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가구가 나무나 흙벽돌로 지은 작은 집에 살았던 시대입니다.
도시보다 시골 가구가 더 많았어요
흥미롭게도 1970년에는 시골(면부) 가구가 도시(시부) 가구보다 많았습니다. 시부는 247만 가구(42.7%), 면부는 279만 가구(48.1%)였습니다. 이는 한국이 아직도 농업 중심 사회였음을 보여줍니다. 도시 중에서도 서울이 가장 큰 도시여서 106만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는 경상북도의 84만 가구보다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역 전체로는 경상북도, 전라남도, 경기도 순으로 농촌 지역의 가구 수가 많았습니다.
연탄과 나무로 밥을 지은 시대
1970년 당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취사용 연료입니다. 연탄을 쓰는 가구가 302만 가구(52.1%), 나무를 쓰는 가구가 272만 가구(46.9%)로, 둘을 합치면 전체의 99%였습니다. 쉽게 말해, 거의 모든 한국인이 연탄불이나 나무불로 밥을 지었던 것입니다. 개스를 사용한 가구는 1만 가구(0.2%), 전기는 4천 가구(0.07%)에 불과했습니다. 현대의 가스레인지나 전기밥솥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 특히 시골 지역은 거의 모두 나무를 사용했고, 도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연탄 사용이 많았습니다.
한 집에 몇 사람이 살았을까요?
1970년 한국의 총 가구원은 3천 39만 명으로, 평균 가구원 수는 약 5.2명이었습니다. 현대의 평균 2-3명과 비교하면 훨씬 많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녀, 며느리가 함께 한 집에 살던 대가족 시대였던 것입니다. 특히 시골의 면부 지역은 약 279만 가구에 1,530만 명이 살아, 가구당 약 5.5명으로 도시의 5.0명보다 더 많은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살았습니다.
데이터 출처와 한계
이 통계는 197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10% 표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합니다. 1970년 당시에만 취사용연료 항목을 조사했기 때문에, 이후 연도와의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데이터는 조사 당시 가구주의 응답을 기반으로 하며, 실제 사용 현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시도별, 주택의 종류별, 취사용연료별은 각각 독립적인 집계이므로, 예를 들어 ‘서울의 독립주택 중 연탄을 사용한 가구’와 같은 교차 분석은 이 자료로는 불가능합니다.